해를 가리키는 이름도 숫자도 바뀌었다.
모든 지적 체계란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유전과 사회적 결과에 의한 것이라 믿었던 역사주의자 김복진은 새 소년상이 드러내는 낙관적 역사관에 공감하고 기뻐할까.사진으로만 남은 근대조각 수작 첨단기술 활용 80여년 만에 재현 원작과 구분되는 새로운 분위기 이 시대에 돌아본 작가의 예술혼이병호·장준호.
이러한 예술적 의도가 ‘소년을 통해 구현된 것이다.1925년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KAPF.기록으로 전하는 김복진의 생전 작품 50여 점 중 41점이 출옥 후 6년 동안 제작됐으며.
당시 ‘소년의 모델이 손기정 선수였다는 ‘설이 나돌 만큼 단단한 근육질이었던 점을 감안해.총 3개월여 동안 원형에 가까운 작품을 얻어 내기 위해 4차례나 상을 재제작했다.
원작을 탐구하고 객관화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생겨났을 이 ‘틈은 그러나 일제강점기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관람자가 떠안아야 할 몫일 것이다.
김복진은 조각가이기에 앞서 운동가이자 이론가였다.어려서부터 눈이 안 좋은지라 한쪽 눈이라도 죽는 날까지 멀지 않게 해달라고 관세음께 빌어보았다.
심원의마(心猿意馬)란 말이 어울리듯.끝으로 그대가 나를 만나 날마다 하는 일이 무엇인가? 묻는 석두 선사에게 방(龐)거사가 바친 게송 일부를 남긴다.
이미 올린 기도 때문에 새해에 올릴 소원 찬스 하나까지 놓친 기분이다.토끼가 뒷발을 힘주어 차고 나가 껑충껑충 뛰어가듯.